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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그리스, 로마, 카이사르, 요한, 예수 ('20.09.21)

정상에서만납시다 2020. 9. 21. 21:28

중장보병 전술이란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에서 생겨난 전술로서 머리가슴무릎 등을 갑옷으로 가리고 왼손에는 둥근 방패를 든 보병들이 밀착하여 일렬로 늘어선 전투 형태를 말한다. 이런 형태의 전열은 여러 줄로 늘어서 제1열의 병사가 앞으로 나가다가 쓰러지면 제2열의 병사가 그 자리를 채우면서 집단으로 적과 싸우는 것이었다. 바로 이 전술을 써서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대군을 막아 냈었다.

 

로마가 착실히 국내 기반을 다져갈 즈음 세계 대제국을 건설하려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말라리아로 죽었다. 그와 함께 알렉산드로스의 대제국은 분열되기 시작했으며, 주변 정세의 변화는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꿈꾸던 로마에게는 아주 좋은 여건을 가져다 주었다.

 

전투용 코끼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원정 때부터 썼던 방법

 

기원전 49 1 10일 밤. 루비콘 강을 건너서 카이사르가 로마에 입성했을 때 로마는 텅 비어 있었다. 카이사르의 무혈 쿠데타는 대성공이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르루투스 일파가 황급히 로마 밖으로 도망 칠 수밖에 없었던 반면에 안토니우스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이후 로마의 정치는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존경받는 키케로 등 3인에 의해 좌우됐다.

 

클레오파트라는 과거에 카이사르를 유혹해서 정권을 잡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던 안토니우스의 힘을 빌어 자신의 세력을 안정시켜 보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온갖 금은 보화로 장식한 배 위에서 화려한 향연을 베풀어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들뜨게 했으며, 재치 있고 매력이 넘치는 사교술과 요염한 자태로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웠던 헬레니즘 왕국들 가운데 단 하나 남아 있던 이집트마저 멸망하고 로마의 지중해 통일이 완성됐다. 아울러 안토니우스의 죽음으로 100년에 걸쳐 계속됐던 로마의 내란도 모두 끝났다.

 

유대인은 기원전 2세기 중엽에 독립 왕국을 세웠으나, 기원전 63년 로마에 정복되고 말았다. 로마는 이 왕국의 종주권을 유대 남방의 토호 출신 헤롯 왕가에 넘겨주었다. 헤롯 Herodes 왕은 잔혹한 정치를 평쳤지만 정치적 수완은 있어서 로마 공화정 말기 대변동 속에서도 권력을 교묘히 지켜나갔다. 결국 아우구스투스에게도 인정을 받아 팔레스타인 지방 전체를 다스리게 됐다.

 

열심당 Zealot, 예수의 12제자들 중에는 이 당파에 속한 자가 있어서 열심당의 시몬이라고 불렸다.

 

요한은 스스로를 황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부르며 금욕적인 생황을 하면서 요르단 강 하류에서 설교를 했다.

 

헤롯 안티파스는 살로메의 요구에 의해서 결국 옥에 갇혀 있던 세계 요한의 목을 자르고 은쟁반에 담아 주었다. 복수에 성공한 헤로디아는 기뻐 날뛰었지만, 헤롯 안티파스는 그날부터 요한의 망령이 나타나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더욱이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실제로 그것은 예수에 관한 소문 이었다.

 

기원전 6년 무렵,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이 아기가 바로 예수였다.

 

이스라엘에서는 예전부터 그들만의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가 있었다. 선민사상, 구세주Messiah (메시아 사상)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예수는 황야로 들어가 40일간 금식하며 기도, 그 후 갈릴리로 내려옴. 만민구원의 설교를 시작

산상수훈 Sermon on the Mount, 복음 신앙

 

예수의 가르침은 철저하게 복음신앙이었다. 유대교의 편협함과 우월감에서 벗어나 하느님에 대한 믿음, 이웃 사랑 등을 강조하며 복음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누구든 여호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만민평등의 구원사상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최대 업적은 기독교의 공인

 

정복된 그리스가 정복자인 로마를 문화적으로 정복했다.’ – 로마는 문학, 예술, 사상 등 다방면에서 그리스 문화의 모방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

 

중산 시민 계층의 몰락 : 결국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건전하고 안정된 중산 시민 계층을 지니지 못한 데서 비롯

 

중세가 시작되는 시대적인 전환점 : 서로마 제국의 몰락 (고대 : 그리스 ~ 로마)

 

게르만족의 이동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게르만족을 마음속으로는 야만인이라고 멸시

 

가신 제도, 로마시대 은대지 제도, 봉토, 봉건, 중세, 충성 서약, 피라미드형 계층제, 지방분권적인 성격

 

이슬람교, 헤지라 Hegira, 기원 원년, 서기 622, 경전 <<꾸란>>

 

중세 교회의 최대 무기는 파문이었다. 교황의 세속적 권력이 강대해지자 지상의 최고 권력자인 국왕과 우월권을 놓고 싸움이 벌어졌으며, 11세기 이후 약 2세기에 걸쳐 격렬한 투쟁이 전개됐다.

 

독일어로 성벽이라는 뜻의 부르크는 상공업 중심의 중세 도시를 뜻하게 되었다.

 

중세 도시의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은 점점 활동의 규모가 커지자 길드 guild라는 조합을 조직

 

현재 종합대학이라는 유니버시티와 단과대학을 뜻하는 칼리지 College는 사실 학생조합과 교수조합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

 

중세 사회 <-> 이슬람 제국 <-> 몽골 제국 (일부 다처, 혈연적 유대, 기마술, 참을성, 용맹)

 

뚜렷하고도 정의로운 명분이 없으면 우리의 사기가 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주위에서 침략자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칭기즈칸은 이 점을 계산하고 금나라가 먼저 공격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원래 폐페스트의 일종인 흑사병으로 유럽인의 1/3~ 1/2 가 감소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최후의 봉건적 전쟁, 기사층의 몰락 및 왕의 세력 확대, 잔다르크

15세기 갑옷의 무게는 보통 60~80킬로그램

 

17세기 왕권신수설, 중상주의 Mercantilism 정책, /은 화폐  중금주의Bullionism, 국가주의

 

프랑스 1516 볼로냐 정교협약

 

근대 철학의 두 조류 : 영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경험론, 다른 하나는 대륙에서 발전한 합리론 (Ex; 데카르트)

 

17세기 과학혁명, 귀납법

 

에스파냐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독일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청교도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메이 플라워 호’, 가톨릭은 메릴랜드, 퀘이커는 펜실베니아, 위그노 등은 북부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릴 곳을 찾다

정치적 박해, 중벌로 유형, 모험가, 군인 등등

 

1773 보스턴 차 사건 Boston Tea Party’ : 식민지인들이 인디언으로 변장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동인도 회사의 선백에 선적돼 있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 버린 것

 

1776 7 4 : ‘독립선언문 Declaration of Independence’

 

프랑스 혁명 : 구제도의 모순을 타도하고 시민계급이 정치 권력을 장악한 전형적인 시민혁명

-        1신분 성직자 (총 인구의 0.004%, 10만명, 전 국토의 10% 소유)

-        2신분 귀족 (전 국토의 20%,  20~ 25만명)

-        3신분 시민, 농민, 도시 노동자

 

앙시앵 레짐(구제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 들라쿠르아

 

프랑스는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내맡겼다.” – 앙드레 모루아

 

나폴레옹 전술의 특징은 우선 수비전을 포기하고 공격을 중시한 점에 있다. 병사의 사기는 승리의 묘약

 

[참고도서] 궁금해서 밤새 읽는 세계사 (20.09.09) - <김경묵>